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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 15:12)

 

선교사 시대 (성베드로수녀회)

성가수도회 설립은 영국 벤슨(Edward W. Benson) 켄터베리 대주교가 1889년 선교사 코프(John Corfe) 주교를 한국에 파견하여 성공회가 이 땅에 심겨진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한성공회의 코프 초대주교가 영국 길번시에 있는 ‘성베드로수녀회’에 요청하여 한국에 파송된 수녀들의 도움으로 여성들을 위한 선교사업과 병원사업을 추진하였던 것을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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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성베드로수녀회’는 1892년 5명의 수녀들을 파송한데 이어 모두 18명의 수녀가 파송되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봉사하며 1940년 강제 출국할 때까지 48년간 헌신했다.
해방 후 마리아클라라 수녀가 다시 돌아와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중 포로가 되어 한국수도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성가수도회 설립은 ‘성베드로수녀회’가 여성선교를 위하여 선교관을 열고 여전도사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데서 시작되었다. 영국 수녀들의 언어 제한과 영국으로부터의 계속적인 수녀 파송의 어려움은 방인(邦人)수녀회의 설립을 더욱 갈망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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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설립

1925년 9월 14일 ‘성가영광’ 축일은 성가수도회는 물론 대한성공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바로 이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비비가 첫 지원자로 성가수도회에 입회하면서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성십자가수도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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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조마가 주교는 조선에 수녀원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성베드로수녀회’의 기본정신으로 청빈, 절조, 복종의 세 가지를 복음의 특별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면서 수도회의 원칙을 밝혔다.

조마가 주교는 1925년 전도구연합회와 교구의회에서 ‘조선성공회 내 수녀원 설립에 관한 규칙’을 제정, 공포했다. 이 규칙에 의하면 수녀회의 명칭을 ‘성십자가수도회’로 하고 위치는 서울 정동의 ‘성베드로수녀회’안에 두며, 주교와 영국 수녀원장이 한국수녀회의 관리책임을 지고, 구체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할 수녀 1인을 임명키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역사가 열리고 한국수도회로 자리매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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