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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클라라 (Sr. Mary Clare Whity) 수녀

pic 성가수도회 초대신모 마리아클라라수녀는 1883년 아일랜드에서 출생, 1923년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게 납치되어 1959년 11월 6일 중강진 '죽음의 행진'의 눈속에서 순교하였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전문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특별히 어학과 미술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1913년에 성 베드로 수녀회에 입회하고, 1915년에 정기서약을 하였다. 수녀회 입회 전에는 조마가 신부가 관할하는 교회일을 도왔고, 후에 런던 성어거스틴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조마가 주교가 시무하고 있는 대한성공회에 1923년 입국하여, 한국어 공부를 한 후 기도서 번역하는 일을 하였으며 수도회 성무일과와 회헌과 규칙, 전례 예식서를 만들었다. 또한 교리 공부를 도와줄 한국인 전도부인을 데리고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에 힘을 쏟았다.

마리아클라라 수녀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25년 9월 14일 성가영광 축일에 성가수도회 설립을 하는데 대들보 역할을 하고 성가수도회 초대신모로 취임한 것이다. 이 때 첫 번째 한국인 수도자 지원자는 이비비였으며, 조마가 주교는 작은 집 하나를 수도원으로 정하고 축성하였다.

pic 마리아클라라수녀는 1940년에 대동아 전쟁 중 외국인, 선교사라는 이유로 영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그 후 1947년 1월 20일에 재입국하여 6.25 전쟁 때까지 성가수도회 지도수녀로 헌신였다. 1950년 6.25전쟁당시 북한군에 의하여 납치되어, 1950년 11월 6일 북한 중강진 '죽음의 행진'의 눈 속에서 순교하였다.

별세 후 함께 포로생활을 하던 천주교 프랑스 가르멜수녀회 수도자들이 마리아클라라수녀의 십자가와 종신서약 반지를 성베드로수녀회에 전달했다. 1969년 영국 성베드로수녀회의 베릴수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클라라수녀의 십자가를 성가수도회에 기증하였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님과 성가수도회의 영성은 십자가 영성이다. 십자가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행하신 십자가를 통한 사랑이요, 희생이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님은 자신을 작은 자로 낮추는 겸손한 사랑이요, 성가수도회 수녀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귀향을 포기한 모성적 사랑의 희생이다. ‘죽음의 행진’ 도중에서도 이웃을 향한 나눔과 섬김은 사랑의 마음이며,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는 십자가의 사랑이다. 언제나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열정과 찬미의 삶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일치의 사랑이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님의 영성은 십자가 영성이고, 중심은 사랑이다. 성가수도회가 십자가 영성으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듯, 수녀님은 성가수도회 수녀들의 삶의 모범으로 앞서 길을 예비하신 작은 자의 삶을 살아내신 사랑의 증거자였다.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땅에 육화되어 오셨고, ‘죽음의 행진’에서 죽음으로 십자가를 세우셨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성가의 향기로 남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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